사람들은 흔히 제가 하는 일을 운수업이라고 합니다.

짐을 싣고 전국을 떠돌며 먹고사는 일.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저는 “운수(運輸)”라는 말이 참 묘하게 들립니다.

한자로 보면 옮길 운(運), 보낼 수(輸).

처음에는 단순히 화물을 나르는 말인 줄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긴 세월 전국을 떠돌며 살아보니, 사람의 운도 함께 길 위를 흘러다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습니다.

어떤 날은 일이 꼬일 만큼 꼬이고, 어떤 날은 이상하리만큼 길이 풀립니다. 같은 일을 해도 누구는 무너지고 누구는 살아남습니다. 그래서 저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합니다.

운수업이라는 것은 단순히 짐만 나르는 일이 아니라, 사람의 운 또한 함께 흘러가는 일인지도 모르겠다고 말입니다.

저는 운전을 하며 유튜브를 자주 틀어놓습니다. 특히 우주와 관련된 이야기, 그리고 불교의 연기론 같은 이야기를 흘러가듯 듣곤 합니다. 그렇다고 제가 불교를 깊이 공부한 사람은 아닙니다. 경전을 읽은 적도 없고, 전문적으로 아는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이가 들수록 그런 단어들이 머릿속에 남기 시작했습니다.

찰나.
겁.
윤회.
연기.

처음에는 단순한 종교 용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전국을 떠돌며 새벽 고속도로를 달리고, 휴게소에 차를 세워둔 채 혼자 커피를 마시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우주의 시간으로 보면 인간의 삶은 정말 찰나에 불과한 것 아닐까.”

그러던 어느 날부터 저는 빅뱅 이전의 우주에 대해 혼자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우주는 정말 아무것도 없는 무(無)에서 갑자기 생겨난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이전의 어떤 상태가 있었고, 그 상태가 지금의 우주로 거대한 변화를 일으킨 것일까.

그 생각을 하다 보니 저는 “전역전이”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습니다.

물리학자가 쓰는 정확한 의미로 사용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제 나름대로는 “우주 전체의 상태가 다른 상태로 넘어가는 거대한 변화” 정도의 뜻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인간 존재 또한 비슷한 구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의 나는 분명 언젠가 끝납니다. 몸은 흙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살아가며 만들었던 인연과 말과 행동, 좋은 일과 나쁜 일까지 모두 완전히 사라지는 것일까.

저는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의 나는 끝나더라도, 내가 만든 흐름은 끝나지 않는 것 아닐까. 그 흐름이 무량한 겁의 시간을 지나 또 다른 존재와 이어지는 것 아닐까. 다만 그 존재는 지금의 나와 같은 내가 아니라, 내가 알지 못하는 새로운 어떤 존재일 뿐이라는 생각입니다.

불교에서는 고정된 나는 없다고 말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또 윤회를 이야기합니다. 처음에는 그것이 서로 모순처럼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윤회란 같은 내가 다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인연과 업의 흐름이 다른 형태로 이어지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닐까.

돌이켜 보면 저는 불교를 공부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주와 인간 존재를 혼자 생각하다 보니, 나중에 보니 불교의 연기와 윤회 구조와 닮아 있는 부분이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 것입니다.

제가 이전에 정리해 두었던 ‘가설형 논문’ 역시 그런 고민 속에서 나온 글입니다.
관심 있는 분은 제 사이트 “ROAD LIFE”에 올려둔 관련 글을 보셔도 됩니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한 사람의 소회일 뿐입니다. 저는 종교인도 아니고 학자도 아닙니다. 전국을 떠돌며 살아온 한 사람이 긴 도로 위에서 문득문득 떠오른 생각들을 정리해 보는 것뿐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느낍니다.

사람은 찰나를 살지만,
그 찰나가 남긴 흐름은 생각보다 멀리 이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것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