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화물은 끝까지 갔습니다

그날, 화물은 끝까지 갔습니다

화물을 싣고 길을 나설 때마다 늘 같은 마음입니다.

사고 없이, 문제 없이, 제 손을 떠날 때까지 무사히.

어제 저는 남동공단에서 부산 사하로 내려오는 오더를 하나 잡았습니다. 바렌트 여섯 개, 전자 키패널이 실린 대형 화물이었습니다. 바닥 면적이 넓고 무게도 상당했고, 전체 중량은 아무리 적게 잡아도 3톤은 넘는 짐이었습니다. 제 차량이 3.5톤이고 적재 한계가 3.75톤까지이니, 수치상으로는 무리가 없는 오더였습니다. 그래서 그대로 싣고 출발했습니다.

문제는 내려오는 길에 생겼습니다. 괴산 휴게소를 지나 문경 쪽으로 접어들 무렵, 공사 구간이 이어지며 차량들이 길게 서행하고 있었습니다. 속도는 거의 기어가듯 느렸고, 그 상태가 2km 넘게 이어졌습니다. 저는 늘 그렇듯 앞차와 거리를 충분히 두고 브레이크를 밟고 있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옆에서 폭발음처럼 큰 소리가 나며 충격이 전해졌습니다. 몸이 앞으로 튕겨 나갈 정도였고, 놀란 반사작용에 발이 브레이크에서 잠시 떨어졌습니다. 차량이 순간적으로 앞으로 밀렸다가 다시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아 멈췄습니다. 다행히 앞차와 거리를 충분히 두고 있었기에 연쇄 추돌로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사이드 브레이크를 채우고 내려서 확인해 보니, 뒤에서 윙바디 차량이 제 차를 들이받은 상황이었습니다. 제 차량은 멀쩡했지만, 상대 차량의 앞그릴은 눈에 띄게 파손돼 있었습니다. 볼보 25톤 윙이었습니다. 외관 상태로 보아 출고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거의 새 차였습니다.

볼보 25톤 윙이면 출고가가 최소 3억 원은 됩니다. 그 차주로 보이는 분은 나이가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쯤으로 보였습니다. 제 경험상, 그런 차량을 그 나이에 현금으로 구매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거의 100% 캐피탈을 끼고, 풀할부로 운용하고 있다고 봐야 맞습니다.

그 순간 머릿속에 계산이 스쳤습니다.

만약 제가 그 자리에서 뒷목을 잡고 주저앉았다면, 혹은 “엔진 쪽에 충격이 간 것 같다”, “차 내부에 문제가 생겼을 수도 있다”고 말을 꺼냈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 차량은 설령 한 달 뒤에 팔아도 3억을 온전히 받을 수 없습니다. 잘 쳐도 2억 5천입니다. 순식간에 5천만 원이 증발합니다. 차주는 바로 신용불량자로 전락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보험 처리를 하더라도, 할증으로 매달 보험료가 백만 원 단위로 뛰는 건 불 보듯 뻔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저는 제 몸과 차를 다시 한 번 확인했습니다. 다행히 특별한 이상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문제를 키우지 않기로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저는 그 사람을 살려준 셈이었고, 대신 제가 손해를 볼 수도 있는 선택을 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차에 다시 올라 운전을 시작하자, 또 다른 걱정이 밀려왔습니다.

화물이었습니다.

급정지 상황에서 저 정도 충격이 있었는데, 저 안에 실린 바렌트들이 무사할 리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미 휴게소를 지나 한참을 내려온 뒤였고, 되돌아가 확인할 상황도 아니었습니다. 어차피 다음 날 아침 하차 예정이었기에, 휴게소에 차를 세우고 잠을 청했습니다.

잠은 오지 않았습니다.

혹시라도 화물 일부가 파손됐다면, 금액이 크지 않더라도 수량이 많으면 제 부담이 될 수 있었습니다. ‘괜히 그때 괜찮다고 한 건 아니었을까’ 하는 후회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고, 할 수 있는 건 내일을 맞이하는 것뿐이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하차지에 도착했습니다.

큰길에서 하차 장소로 들어가는 약 15m 정도의 오르막길이 있었는데, 경사가 상당히 급했습니다. 이미 내부에서 화물이 밀린 상태였고, 포장도 일부 터져 있었습니다. 멈추면 더 위험해질 것 같아 기어를 1단에 넣고 조심스럽게 올라갔습니다.

평지에 차를 세우고 화물칸을 열어보니, 우려했던 대로 일부 바렌트가 더 밀려 나와 있었습니다. 이 상태에서는 제가 혼자 손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괜히 건드렸다가 책임이 더 커질 수도 있었기 때문에, 그대로 두고 관계자분들이 나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상황을 있는 그대로 설명드렸습니다. 이동 중 급정지가 있었고, 오르막을 오르다 보니 이렇게 된 것 같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잠시 현장을 살펴보시던 관계자분들 중 한 분이 조용히 상황을 정리하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냥 가셔도 됩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동안 쌓였던 긴장이 한꺼번에 풀렸습니다. 몇 번이고 감사 인사를 드리고 현장을 나왔습니다.

이틀 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사고가 날 뻔했고, 화물이 쏟아질 뻔했고, 마음속으로는 여러 번 계산과 후회를 반복했습니다. 하지만 돌아보면, 그 상황 속에서도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했던 것 같습니다. 앞차와 거리를 지킨 것, 감정을 앞세우지 않은 것, 화물을 끝까지 책임지고 가져간 것, 그리고 누군가의 인생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는 선택을 하지 않은 것까지.

그날, 화물은 끝까지 갔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이 일을 왜 계속하고 있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됐습니다.

글 번호: 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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