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차로 넘은 미시령 옛길

어제 강릉에서 부산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김해에서 지게차를 싣고 속초까지 올라왔다.

어제 오후에 상차했고, 당연히 오늘 아침에 하차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속초 쪽은 하차하고 나면 콜이 거의 없다. 재수가 좋으면 강릉쯤에서 경기권이나 전라권 콜을 잡을 수도 있겠지만, 내게 그런 행운이 자주 오는 편은 아니다.

결국 최소 원주까지는 공차로 내려가야 한다.

마침 원주에서 내일 아침 진해 하차 콜이 하나 떠 있길래 그냥 잡았다. 빈 차로 달려야 하는 거리는 아깝지만, 그래도 다음 짐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그런데 그냥 가는 건 또 재미없다.

시간도 넉넉하고, 어차피 빈 차로 가는 길이라 오늘은 미시령 옛길로 넘어가 보기로 했다.

하필이면 산길 전체가 운무에 덮여 있었다.
멀리 펼쳐진 경관은 보이지 않았고, 눈앞의 젖은 도로와 안개 속 전봇대, 산비탈만 보였다.

바른 도로 였다면 그냥 지나쳤을 길가 표지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화물차 20km.
탱크도 20km.

웃기기도 하고, 맞는 말이기도 했다.
이 길에서는 힘센 놈도 별수 없다. 화물차든 탱크든, 안개 낀 산길에서는 천천히 가야 한다.

빈 차로 넘어가는 길이라 마음은 급할 것도 없었지만, 그래도 공차는 공차다. 기름은 타고, 시간은 가고, 다음 짐은 원주에 있다.

좋은 풍경을 보러 들어간 길에서 결국 본 것은 경치가 아니라 표지판이었다.
그런데 어쩌면 그게 오늘 길의 핵심이었는지도 모른다.

세상엔 힘으로 밀어붙일 수 없는 길이 있다.
미시령 옛길에서는 화물차도, 탱크도 20km다.

그것도 잠시 금방 용대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