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문득, 불교의 연기(緣起)라는 기본 골조 하나가 마음에 툭 내려앉았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으므로 이것이 있다.”
“내가 있음으로 너가 잇고 너가 있음으로 내가 있다”
이 단순하고도 자명한 한 줄의 원리를 쥐고, 묵묵히 생각의 타래를 풀어보았다.
생각은 꼬리를 물고 시공간을 가로지르며 뻗어 나갔다.
위아래로 보면 아버지로부터 나에게로, 나에게서 내 자식과 손자로 이어지는 거대한 시간의 줄기가 보였다.
이를 다시 좌우로 벌려보니 나와 내 아내, 그리고 처가와 사돈, 이종사촌들까지 촘촘하게 엮인 공간의 그물이 펼쳐졌다.
이 무수한 종횡의 실들이 교차하는 중심에 바로 지금의 내가 서 있었다.
여기서 사유를 한 걸음 더 밀어 올렸다.
만약 이 눈에 보이지 않는 연결의 끈들을 전 우주적인 스케일로 넓혀본다면 어떨까.
우주의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지만, 이 모든 연(緣)들이 촘촘하게 서로를 채우고 있을 것이라는 지점에 생각이 닿았다.
비록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이 연들은 마치 전파처럼 우주를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거칠게 넘실거리며 떠돌던 보이지 않는 파동들이, 어느 순간 서로의 사이클(주파수)과 딱 맞아떨어지는 자리를 만날 때,
비로소 물질이라는 ‘형상’을 갖추고 우리 눈앞의 현실로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수많은 전파 중에서도 나와 가장 강력하게 엉겨 있는 인연의 주파수는, 그 다음 인연과도 더 쉽게 공명하고 연결될 터였다.
결국 내가 지금 이 순간 맺고 있는 주위의 연들이, 다음에 이어질 나의 세상과 연결될 가능성을 가장 높이는 강력한 자석이 되는 셈이다.
내가 띄워 보낸 주파수가 나의 다음 세상을 결정한다는 이 역동적인 흐름.
물론 나와 같은 생각을 한 사람들도 많겠지.
그렇지만 나는 그 어느 누구의 영향을 받지 않고 오직 내 안의 사유만으로 이 거대한 우주의 그물을 그려본
다. 책에 적힌 남의 지식을 외운 것이 아니라, 단 하나의 중심 개념에서 출발해 스스로 우주의 작동 원리를 올려본다.
우주를 가득 채운 보이지 않는 인연의 주파수들, 그리고 그 흐름 속에서 오늘도 묵묵히 궤적을 그려가고 있는 나라는 존재.
홀로 도달한 이 깊은 사유의 끝에서, 내 주변을 감싼 모든 인연의 무게가 이전과는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더 이상 내게 악연을 만들 이유가 내겐 없다.
난 내 할 말은 할것이고 주위에서 짖어대는 그 악연들을 내게로 끌어들이지 않을 것이다.


